차우극 집사 성도의 편지
존경하는 목사님, 저 차우극 집사입니다 용기가 없어 진작 찾아 뵙지 못했음이 정말 죄송합니다.
우리 평강교회 50주년을 맞이하여 목사님께서 기뻐하시고 설레어하시는 것을 볼 때 저도 평강교회를 향한 저의 일생을 뒤돌아 보게 됩니다.
제가 기억하는 목사님과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몇 자 전하려 합니다.
목사님께서 개인적으로 저에게 말씀하시길 예수님만 잘 믿으면 꼭 성공한다고 하셨습니다.
그 당시 저는 부족한 저를 위로하시는 말씀으로 생각했습니다.
엄청 추운 어느 날 대림 3동 동네 공터에서 예비군 훈련 때 목사님께서 마지막 교양 말씀이 있었을 때 순서를 기다리시느라 회색 두루마기 입으시고 추운 의자에 앉아 계셨지요. 저는 예비군들 틈속에서 목사님만 바라보며 속으로 말했습니다.
'목사님 손을 주머니에 넣으시든가 다리 사이에 넣으세요. 아니면 장갑 벗고 손을 비비세요.
몸을 움직이세요'
그러나 정자세로 앉아 미소를 머금고 1시간 가까이 대기하시던 목사님을 보고 그 때 부터 저는 목사님이 무서웠습니다.
안양 예비군 훈련장에서도 목사님이 오셔서 천명이 넘는 예비군들 앞에서 말씀하실 때 전부 예, 예, 하고 답할 때 저는 옆사람도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아멘, 아멘을 수도 없이 불렀고 다짐도 했습니다.
30세가 되면 그 때부터 집사로서의 신앙생활을 잘하겠노라고 우리 누님과 한동안 같이 살 때에 누님이 어느 날 말씀 전하시는 목사님 뒤에 누가 계신다고 몇 번이나 말씀하시길래 저는 그 당시 옆에 가습기를 켜놓고 말씀하셔서 혹시 수증기가 발생하면서 그런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을까 하는 바보 같았던 생각이 저도 그 당시 꿈에서 목사님을 뵈었을 때 너무도 밝고, 희고, 빛난 얼굴만 보이셨습니다.
한동안 저는 리비아 해외 현장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도착하자마자 현장 소장이 우리를 불러놓고 집사 직분 받은 사람이 있냐고 해서 저하고 두 사람만 손을 들었는데 그 때부터 회사 내 예배 인도를 제가 우연히 하게 되었습니다. 주일마다 목사님으로부터 은혜받은 말씀과 성경을 찾아 말씀을 준비하였고 주보도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귀국할 때까지 현장 소장님 이하 약 8명 정도를 예배 인도하였습니다.
귀국 후 한동안은 제가 벤처 기업을 한다고 설쳤습니다.
배운 것도, 경험도 없는 제가 솔직히 망할 사업임이 불보듯 했습니다.
처음 시작은 내심 목사님께 자랑이 되는 차집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결론은 목사님께 근심만 되는 저는 바보였습니다.
10년 가까이 하다 완전 파산하고 목사님 뵐 면목도 없고 용기도 없는 가운데 우리 아들은 다행히 다른 회사에 바로 취업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부하직원 10명을 거느린 상장회사에서 인정 받고 있습니다.
목사님께 고백합니다.
제가 사업 실패 후 우리 평강교회를 나오지 않았을 때도 항상 연권사한테 목사님 근황을 묻고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궁금하면 교회 나오면 될게 아니냐고 했습니다.
저는 너무 가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을 뵐 용기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연권사가 목사님 말씀이 차집사 이제 안나오면 죽는다고 했다는 겁니다.
나는 이때다 싶어 예배를 드리게 됐습니다. 많은 세월 예배 자리를 비우고 다시 예배를 드릴 때 너무 행복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목사님이 너무 어렵고 무서워 차일피일 먼저 용서를 구하지도, 안부 인사도 못했습니다.
목사님 항상 하시는 말씀 중에 가지대가 항상 나무에 붙어 있기만 이라도 하란 말씀 명심하고 오래되어 밑둥에 얹는 가지라도 되겠습니다. 목사님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평강교회 50주년을 맞이하여
주후 2025년 3월 9일
차우극 집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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